뜨는 해와 지는 해가 다르지 않듯, 불교에선 생사일여(生死一如)라 하여 생과 사가 같다고 했다.
살면서 죽음은 타인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데, 문명의 발전으로 수명이 늘자, 어떤 이는 5·60세가 돼서야 부모가 사망할 때, 비로소 처음 시신을 마주한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니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니 준비할 수 없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이 없다." - 롤란트 슐츠,『죽음의 에티켓』에서
상여를 보관하는 곳을 상엿집이라 한다.
경산시 무학산엔 300년 넘은 상엿집이 있다.
우리 전통 상여엔 여러 장식이 달리는데, 인물꼭두는 망자를 묘지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야차는 묘지 주변에 있는 귀신을 물리치고, 봉황과 용은 망자의 혼백을 지켜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
상여를 둘러 박혀있는 이것은 '병아리못'이라 불리는데, 망자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황영례 / 상례·상여 연구가 : 전통 상여의 장식은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식이 병아리못입니다. 병아리못은 여러 가지 상여 장식들 중에서 망자가 아닌 남아있는 자들을 유일한 장식입니다.]
지구상에선 대략 1초에 2명, 1분에 100명, 1시간에 6,500명, 하루에 15만 명이 죽는다고 한다.
한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멈추지만, 그것이 곧 단절을 의미하진 않는다.
죽음 이후의 절차가 남아있다.
상례란 상중에 행하는 모든 의례를 지칭하고, 장례는 그 안에서 망자의 시신 처리 과정을 의미한다.
[황영례 / 상례·상여 연구가 : 흔히 상례와 장례를 망자를 위한 예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조선의 유교 문화는 죽음의 문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평생을 본인이 아닌 남겨질 자들을 위해서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후에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상례를 치르면서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쟁과 굶주림이 많았고, 의술에도 한계가 있었다.
삶 속에서 죽음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에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늘며 죽음을 직접 마주하는 경우가 적어지다 보니, 상례의 가치는 희미해졌고, 장례마저 간소히 치르는 세태가 됐다.
바쁜 일상 속에서 타인의 죽음은 깊... (중략)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3_202008150758314448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